족보
  • 우성적(禹成績)
  • 단양우씨(丹陽禹氏)
조선 중기의 무신. 판서 상중(尙中)의 증손, 병사 서규(瑞圭)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637년(인조 15) 정축(丁丑)의 난(亂)이 일어나자 우병영중군(右兵營中軍)으로서 쌍령(雙嶺)에 이르러 청군과 역전하다가 전사하였다. 그때 그는 죽음에 앞서 그의 노복(奴僕)인 귀동(貴同)에게 당부하기를 '나는 곧 죽는다. 너는 몸을 숨기고 있다가 나를 위하여 뼈라도 거두어다오. ' 하니 귀동이 울면서 말하기를, '이미 주인이 나라를 위하여 죽을진대 소인(奴)인들 어찌 주인을 위하여 죽지 않을 수 있으랴. ' 하면서, 곧 시체 옆에서 따라 죽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져 조정에서는 사복시정(司僕寺正)이라는 벼슬을 내리고 정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