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계수(李繼秀)
  • 청안이씨(淸安李氏),  출생~사망 : 1567 ~ 1637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한서(漢瑞). 호는 영풍정(詠風亭). 부친은 이응진(李應軫)이고, 모친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이영경(李永景)의 딸이다. 임진왜란 때 왜구가 침입하자 삼종제(三從弟)인 이눌(李訥)에게 '마땅히 힘을 합쳐 왕실을 보존하고 왜적을 토벌해야 한다.'고 하고는 동해 우산령(牛山嶺)에서 창의하였다. 1598년(선조 31)에 용양위부사직(龍○尉副司直)에 제수되고, 1605년(선조 38)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추록되었으며, 1634년(인조 12)에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으로 승자(陞資)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삼종질(三從姪) 이주천(李柱天)과 의사(義士)들을 모집하여 금천(衿川)에 이르렀다가 진영을 남한산성 부근의 한강으로 옮겼다.이 때 청나라와 화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말에서 떨어져 순절(殉節)하였다. 저서로 '영풍당실기(詠風亭實記)'가 있는데 모두 3권 1책으로 편집되었다. 그 중에서 잡저인 '용사일록(龍蛇日錄)'과 '병자일록(丙子日錄)'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의 시대적 정황을 이해하는데 주요한 역사적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