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중경(仲卿). 부친은 금성군(錦城君) 박인봉(朴仁鳳)이다. 1600년(선조 33) 무과에 급제하여 6도병사(六道兵使)에 이르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2등에 책록되고 무령군(務寧君)에 봉해졌다. 충청도병사(忠淸道兵使)와 정주목사(定州牧使)를 지냈고 병자호란 때 장만(張○)의 부장으로 선발되었다. 1628년 정헌대부(正憲大夫)로 승진하였다. 경상병사(慶尙兵使) 때 염초를 구워 수량을 기록하게 하였다. 사후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었다. 묘는 남양주(南楊州) 진접읍(榛接邑) 진벌리 산 38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