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인언(仁彦). 병사를 역임한 구침(龜琛)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용감하고 호협하여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고, 1583년(선조 16) 북도병마사 휘하의 군관이 되어 야인 정벌에 공을 세웠다. 1592년 왜군이 진주를 침략하여 오자, 경상우병사 김성일(金誠一)의 아장(牙將)이 되어 선봉에서 적장을 사살, 적을 퇴각시켰다. 1593년 4월 김해부사가 되었다. 그해 6월 왜군이 다시 진주성으로 몰려오자 병력을 거느리고 성내에 들어가 성을 사수하고자 하니, 목사 서예원(徐禮元)이 성을 포기하고 도망하려 하였다. 이에 단호히 그 불가함을 주장하고 의병장 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방어에 임하였다. 적병이 근접하자 선봉에서 활로써 왜적 수십명을 사살하고, 화살이 떨어지자 창을 들고 적을 무찔러 적의 시체가 산과 같았다고 한다. 혼전 중에 조총의 탄환을 맞아 전사하니, 나라에서는 호조판서와 겸지의금부사에 추증하였다. 그뒤 진주 사람들이 충민사(忠愍祠)를 세워 제사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