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여의(汝毅). 호는 모두헌(慕杜軒). 진사 면(勉)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의 막하로 들어가 의령(宜寧) 싸움에서 왜군을 격퇴하였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고, 이어서 경상도관찰사 이시발(李時發)의 군관(軍官)이 되었다. 1608년 선조가 죽자 명나라 에서는 임해군(臨海君)을 즉위시키려 하고 일부 대신들도 이에 동조하는 가운데 광해군(光海君)이 즉위함에 광해군의 신변보호를 맡아 내금위장(內禁衛將)으로서 3개월 동안 직접 숙위(宿衛)하여 그 공으로 가선대부에 올랐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격문을 돌려 동지들을 규합, 아들 정로(廷老)로 하여금 이를 지휘하게 하여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