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여경(汝景).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명회(明澮)의 후손이다. 무용(武勇)이 뛰어나고 기사(騎射)에 능하였다. 1619년(광해군 11) 우리나라의 조명군(助明軍)이 요하(遼河)를 건너 심하(深河)에서 후금군에 패하여 요동(遼東), 심양(瀋陽)이 함락되자 조정에서는이 사실을 명나라에 알리기 위하여 그곳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을 물색하였는데, 그와 소통사(小通事) 이용복(李龍福)이 뽑혔다. 그들은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어서 산하이관(山海關)까지 당도하여 천자(天子)를 알현하고 그 자문(咨文)을 받아 돌아왔다.이 공로로 수문장(守門將)에 제수되고, 이듬해인 1620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의주를 수비하면서 많은 적을 살해하였으나 성이 함락되자 동쪽으로 나와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가 전사하였다. 1647년 공조참의에 추증되고, 정려가 세워졌으며, 의주 구암사(龜巖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