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신경원(申景瑗)
  • 평산신씨(平山申氏),  출생~사망 : 1581 ~ 1641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숙헌(叔獻). 우의정 개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성확(成確)이다. 1605년(선조 38)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에 등용되었다. 그뒤 온성판관을 거쳐 부사로 승진하였으며, 1619년(광해군 11) 영유현령(永柔縣令)이 되어 관서지방의 민생을 구휼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신교(薪橋)에서 패전한 관군을 수습하여 안현(鞍峴)에서 반군을 대파함으로써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으로 녹훈되고, 평녕군(平寧君)에 봉해졌다. 이듬해 남병사(南兵使)가 되었는데, 이 당시 군액(軍額)이 모자라 국방업무에 큰 차질이 있자 그는 한정(閑丁)을 무려 550여인이나 찾아내 군포를 부과시켰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부원수로 맹산 철옹성(鐵瓮城)을 지키고 있다가 적의 복병에게 생포되자 수십일 동안 단식으로 항거하였다. 이듬해 강화가 성립되자 패전의 죄로 멀리 귀양갔다. 1638년에 곧 석방되자, 몇몇 조신들이 석방시키지 말 것을 종용하였으나 왕의 비호로 무사하였다. 이듬해 총융사 겸 포도대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