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사신(士愼). 호는 수양세가(首陽世家), 황락거사(黃落居士), 할옹(○翁). 중추원부사 길생(吉生)의 아들이다. 1491년(성종 22) 원수 허종(許琮) 막하의 비장(裨將)이 되어 여진족의 토벌에 종군하였으며, 1495년(연산군 1) 무과에 제2등으로 급제, 선전관을 거쳐 회령판관을 역임하였다. 1506년의 중종반정에 참여, 정국공신(靖國功臣)4등에 녹훈되고 경흥부사로 부임하였으며 1510년(중종 5)의 삼포왜란 때 원수 유순정(柳順汀)의 종사관으로 왜적을 토벌하였고, 그 공으로 병조참의에 승진, 해양군(海陽君)에 책봉되었다. 이후 동부승지, 북병사, 경상우도병사, 한성부좌윤, 공조참판을 거쳐, 평안병사, 경상좌병사, 함경남도병사 등 변경의 장수직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536년 다시 한성부좌윤에 임명되었다가 나이가 많아지자 동지중추부사로 물러나 앉아 명나라 사신이 보내온 천하지도(天下地圖)를 왕명에 의하여 좌의정 홍언필(洪彦弼)과 함께 수정하고 보충하였다. 1538년 공조판서가 되고, 2년 뒤 지중추부사가 되자. 왕에게 '구군팔진육화육변십이장진도 九軍八陣六花六變十二將陣圖'를 올려 무략(武略)을 논하였다. 풍채가 당당하고 궁마(弓馬)에 익숙하며, 군략에 뛰어난 무장으로서 평생 남북의 변경지대 장수로 있으면서 여진과 왜의 침입에 대비하여 군사의 조련과 군비의 정비에 노력하였다. 또한 무신으로서는 드물게 시작을 즐기고 독서를 좋아하여 군서(群書)를 널리 섭렵하였다. 특히, 역대의 산천형세와 여러 나라의 연혁, 이적(夷狄)의 촌락형태와 풍토, 습속 등에 통달함으로써 당대에 숙장(宿將)으로서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양간(襄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