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손종로(孫宗老)
  • 경주손씨(慶州孫氏),  출생~사망 : 1598 ~ 1636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고경(考卿). 호는 낙선당(樂善堂). 우참찬 중돈(仲暾)의 현손이다.

어려서는 문학에 뜻을 두었으나 장성하여서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1618년(광해군 10)에 광해군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에 유폐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농사일에 종사하다가 인조반정 후에 다시 관직에 나아가 1634년(인조 12) 남포현감이 되었다. 이때 도체찰사(都體察使) 김류(金瑬) 로부터 치적이 별로 없다 하여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남한산성에 피신하였다는 말을 듣고 이에 따르고자 하였으나, 이천(利川)에 이르러 길이 막혀 나아가지 못하고 경상좌도병마절도사 허완(許完)이 쌍령(雙嶺)에 주둔하고 있음을 듣고 이에 투신하여 휘하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청나라 군과 싸우던 중 그의 노비인 억부와 함께 전사하였는데, 시체를 찾지 못하여 옷과 관으로 초혼장을 지냈다. 훈련원정(訓鍊院正)을 증직받았고, 1783년(정조 7)에 왕명으로 비각을 세워졌다. 이 비각은 손종로정충비각(孫宗老旌忠碑閣)이라는 이름으로 1992년 문화재자료 제261호로 지정되었다. 1816년(순조 16) 8월에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검단리 덕고개마을에 있으며 재실 단산재(丹山齋)에서 배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