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기종헌(奇宗獻)
  • 행주기씨(幸州奇氏)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경유(景猷). 호는 수허당(守虛堂). 임란공신으로 사과(司果) 기대유(奇大有)의 손자이고, 개백군(皆伯君) 기효근(奇孝謹)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당시 남해현령(南海縣令) 이었던 부친을 따라 왜구토벌에 큰 전공이 있어 훈련원정(訓練院正)에 제수되었고, 1605년(선조 38) 11월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되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으며 행원군(幸原君)의 작위를 받았다. 충청수사(忠淸水使)에 이어 파주목사(坡州牧使)가 되었다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어가(御駕)가 남한산성(南漢山城)에 파천(播遷)하였는데 남포루(南砲樓)를 지킬 것을 명받고 여주목사(驪州牧使) 한필원(韓必遠), 이천부사(利川府使) 조명욱(曺明勖), 양근군수(楊根郡守) 한회일(韓會一), 지평현감(砥平縣監) 박환(朴煥)과 함께 병력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지켰다. 이로써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고,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에 제수되었다. 1637년(인조 15) 충청수사로 재임 당시 미곡과 면포를 횡령하고 전참의(前參議) 나만갑(羅萬甲)의 종에게 관선(官船) 3척을 사사로이 팔아 영해(寧海)로 정배되기도 했다. 그러나 1639년(인조 17) 5월 영의정(領議政) 최명길(崔明吉)이 그의 공을 임금께 아뢰어 가벼운 형벌을 받도록 하였다. 그 후로 녹권(錄券)에 올랐으며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호종제공사실(扈從諸公事實)'조에 기재되었다. 선조가 공신지(功臣地)를 하사한 무안군 운남면 성내리 원성내 마을에는 기효근(奇孝謹), 기자헌(奇自獻), 기종헌을 기리기 위한 도산사가 건립되어 매년 음력 2월 15일에 제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