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양응심(梁應深)
  • 남원양씨(南原梁氏),  출생~사망 : 1570 ~ 1632
조선 중기의 무신. 세조 때의 공신 양성지(梁誠之)의 6대손이며, 참봉 은(誾)의 아들이다. 1600년(선조 33)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서 비변랑(備邊郞)을 겸하였고, 이천현감, 도총부도사, 명천부사, 형조좌랑 등을 역임하였으며, 선조 말년에는 평양판관을 지냈다. 광해군 때 대북정권(大北政權)의 실정에 항의하여 사임하였다. 1623년(인조 1) 사헌부의 탄핵에 의하면, 그는 판관으로 재임하였을 때에 권간(權奸)의 부탁으로 주사(舟師)를 동원하여 미포(米布)를 도둑질하여 5, 6척의 몫을 사용하였다 한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 인조를 강화도에 호종한 뒤 군기시부정이 되고, 평안도의 병마우후(兵馬虞候)를 거쳐 1629년 영변부사가 되었다. 글씨에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