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무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뒤 1592년(선조 25) 고성현령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을 맞았다. 그해 10월 왜군이 진주성을 포위, 공격해오자 목사 김시민(金時敏)이 성을 지키기 위하여 계략을 세웠다. 이때 그는 고성 가장(假將)으로서 진주 복병장(伏兵將) 권유경(權惟敬)과 함께 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남쪽 문을 지키면서 각기 십자(十字) 횃불을 들고 남강(南江) 밖 재 위에 벌려 서서 날라리를 불고 성안에서도 북을 울리고 날라리를 불어 응답하니 적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공격을 멈추었다. 후에 거제 기문포해전(器門浦海戰)에서도 크게 활약하였으나 정유재란 때 전사하였다. 난후에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