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오대남(吳大男)
  • 보성오씨(寶城吳氏),  출생~사망 : ? ~ 1637
조선 중기의 무신. 복룡(伏龍)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에 뛰어나 광해군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인조 대에 부사과, 부사직을 지내고, 이괄(李适)의 난을 당하여 왕을 공주 까지 호종하였으며, 그뒤 효력교위(○力校尉)로 훈련원에 배속되고 분순교위(奮順校尉)에 전임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관군을 이끌고 평산(平山)에서 전공을 세우고 병절교위(秉節校尉)가 되어 훈련원도감이 되었으나 사직하였다. 충의교위(忠毅校尉)를 역임하고, 1631년에 서천포수군식읍만호(舒川浦水軍食邑萬戶)로 부사과에 임명되고, 이어 서천만호가 되었다가 만기로 귀가하였다. 1636년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주부 최난선(崔蘭善), 사인(士人) 경지연(慶之衍) 등과 더불어 의용군 수백명을 모집하여 광주(廣州)에 이르러 정세규(鄭世規)와 합세하여 검천(儉川) 들에서 접전, 대승을 거두어 고원군수에 임명되었다. 이때에 적세가 더욱 치열하여 왕세자를 호종하고 강화도에 가서 남문수문장이 되고, 적군이 강화에 당도하자 원로 대신을 따라 분신, 순절하였다. 1675년(숙종 1)에 정문이 세워지고 호조좌랑에 추증되었으며, 현도중학교 앞에 충신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