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항(李沆)
  • 함평이씨(咸平李氏),  출생~사망 : 1586 ~ 1637
조선 중기의 무신. 동지중추부사 수원(樹元)의 아들이다.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 북방을 지켰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에 훈국장관(訓局將官)으로 공을 세워 당상관으로 가자되고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되었으며 함녕군(咸寧君)에 봉해졌다. 장단부사가 된 뒤 계속 승진하여 내직으로는 훈련도감, 포도대장, 외직으로 충청도, 경기도, 함경도, 평안도병마절도사 등 주로 북방지방의 병사를 10년간에 3차나 역임하였다. 1636년 12월 청병의 침입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에 행행(行幸)하였을 때 종성의 행영(行營)에 있다가 청병의 침입소식을 듣고 서울로 달려왔으나 군대를 이끌고 진(鎭)에 돌아가라는 왕명을 받았다. 대간들이 서울 구원이 늦은 장수들의 죄를 추론(追論)할 때 각도 장수들과 함께 파직되어 곽산 능한성(凌漢城)에 유배되었다가 수개월 만에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인조는 그가 죽자 슬퍼하며 그의 관직을 복구시켰다. 김진규(金鎭圭)가 묘갈명을 지었다. 시호는 경무(景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