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무신, 의병장.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원첨정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합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 장령(掌令) 정인홍(鄭仁弘)의 의병부대에 합류, 중위장(中衛將)이 되어 실질적인 군지휘 책임자로서 뛰어난 통솔력을 발휘하였다. 합천군수 전현룡(田見龍)이 적을 두고 달아나자 그를 대신하여 한때 합천가장(陜川假將)을 맡기도 하였다. 1592년(선조 25) 6월 초순에 벌어진 무계전투(茂溪戰鬪)때 정인홍 군의 선봉장이 되어 적병 100여명을 사살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는데, 이때 그는 3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적진을 포위한 다음 50여명의 정예병을 직접 이끌고 왜군의 병사(兵舍)에 뛰어들어 기습전으로 적을 대파한 것이다. 그해 6월말에 있었던 초계(草溪)의 마진전투(馬津戰鬪)에서도 특출한 전술을 구사, 낙동강을 항해중이던 왜선단(倭船團)을 급습함으로써 이를 격파한 뒤, 잔류 적선을 섬멸하기 위하여 말을 채찍질하며 물 가운데로 추격하던 중 하상의 묽은 모래와 진흙 속에 그대로 빠져 애마와 함께 최후를 마쳤다. 뒤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