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무신. 자는 무강(無疆). 증조부는 원천부원군(原川府院君) 변안렬(邊安烈)이고, 조부는 태종 때 원종공신(元從功臣) 좌군총제(左軍摠制) 변이(邊○)이고, 부친은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지낸 변상회(邊尙會)이다. 어려서부터 궁술(弓術)과 마술(馬術)을 익혀 뛰어났으며, 독서를 열심히 하여 대의(大義)에도 통달하였다. 1474년(성종 5)에 임금이 후원에서 관사(觀射)를 했을 때, 변오천은 다른 무인들과 더불어 뛰어난 솜씨를 보여서 궁전(弓箭)을 하사 받았다. 1465년(세조 11)에 무과에 등재하였으며, 중시(重試)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첨정(僉正), 훈련원부정(訓練院副正), 풍천부사(豊川府使) 등을 역임했다. 1500년(연산군 6)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 겸사복(兼司僕)이 되었고, 1502년(연산군 8) 4월에 왜적 40여 명이 흥양(興陽) 지방에 노략질하려다가 나졸들에 막아 돌아갔다는 치계(馳啓)를 하였다. 뒤에 공주, 나주목사를 거쳐 전라병사(全羅兵使)가 되었다. 사후에 둘째 아들이 원종공신(元從功臣)으로 책록되자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으로 추증되었다. 묘는 남양주(南楊州) 별내면(別內面) 광전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