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박두성(朴斗星)
  • 무안박씨(務安朴氏),  출생~사망 : 1888 ~ 1963
한글점자(點字)의 창안자. 호는 송암(松庵). 경기도 강화 출신. 1906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어의동보통학교(於義洞普通學校) 교사로 있다가 1913년 제생원맹아부(濟生院盲啞部: 서울盲學校의 전신) 교사로 취임하여, 이때부터 맹인교육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일어점자로만 교육을 해야 하는 것에 불만을 가져오다가 1920년부터 한글점자 연구에 착수하였다. 1923년 1월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7년간의 연구를 거쳐, 1926년 이른바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 불리는 한글점자를 완성하였다. 당시 일제의 검인정교과서 탄압에도 불구하고이 한글점자로 '조선어독본 朝鮮語讀本'을 점자출판하였으며, 이에 따라 맹인들에게도 민족의식이 더욱 고취되었다. 1935년 5월에 개최된 부면협의원(府面協議員)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한글점자투표가 가능하게 되어 맹인들의 사회참여의 길이 확장되었다. 1931년부터 성경의 점자원판(點字原板) 제작에 착수하여 1941년에 점자로 된 '신약성서 新約聖書'를 완성하였다. 1935년 제생원을 정년퇴직하고, 1936년 인천 영화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였다가 1939년에 사임하였다. 광복 후 제헌국회에서는 그가 창안한 한글점자투표를 승인받았으며, 1950년 6, 25사변으로 신약 점자아연판이 소실되자 다시 제작에 착수하여 1957년 '성경전서'의 점역(點譯)을 완성하였다. 또한, 감리교신자로서 서울 정동교회(貞洞敎會)와 인천 내리교회(內里敎會)에 교적(敎籍)을 두고 맹인들을 전도하였다. 그가 마련한 교재용 점자자료는 70여종에 달하며, 사재(私財)를 기울여 지방의 각처에 통신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장애자교육에 무관심하였던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상황하에서 사회에서 소외된 맹인들을 위하여 교육에 전념하였으며, 한글점자를 창안하여 특수교육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등 평생을 장애자교육에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