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학자. 호는 치암(痴○). 경상북도 봉화 출생. 세기(世基)의 장남이며, 부인은 강남희(姜男熙)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 입학하였다가 1921년 귀국하여 중동학교에 입학, 1924년 졸업하였다. 그해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하여 중동학교 교비생으로 선발되었고, 1926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사학과에 입학, 1929년 졸업하였다. 1962년 고려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1966년 학술원 종신회원이 되었다. 교육활동으로는 1937년 중동학교 교원이 된 것을 비롯하여, 1945년 국학대학 교수, 1946년 고려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1951년 성균관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1966년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장, 1972년 영남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945년 이병도(李丙燾), 김상기(金庠基)와 함께 임시중등국사교원양성소를 설치하여 국사교원을 양성하였고, 1970년 학교법인 중동학원 이사, 1972년 학교법인 성균관대학 이사를 역임하였다. 학술 및 연구활동으로는 1929년 조선사편수회의 촉탁으로 임명된 뒤 수사관보(修史官補), 수사관을 역임하였고, 1945년 정부기관으로 국사관을 창설하여 관장이 되었다. 1949년 문교부 편수국장과 고등고시위원(제2회부터 제16회까지)을 역임하였으며, 1951년 국사관을 국사편찬위원회로 개편하여 사무국장으로서 많은 희귀사료의 수집, 간행을 주관하였다. 학회활동으로는 1934년 진단학회의 발기를 비롯하여, 1958년 한국사학회를 조직하여 그 이사장이 되었고, 1967년 한국사학연구회를 조직하여 그 회장이 되었다. 또한, 동학기념사업회 부회장, 민족문화추진회 이사, 국방사학회 고문, 성균관 고문, 한얼원 회장, 국제역사학회 한국위원회 부위원장,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국사신강'(공저, 1957), '조선사료해설집'(1964), '홍의장군'(1972) 등이 있고, '병호시비(屛虎是非)에 대하여', '기묘사화의 유래에 대한 일고찰', '조선 중종시대의 금은(禁銀)문제'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그밖에 1964년 화갑기념논총이 발행되었으며, 1973년 고희기념논총이 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