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신용구(申鏞九)
  • 평산신씨(平山申氏),  출생~사망 : 1883 ~ 1967
천도교 교령(敎領). 도호(道號)는 묵암(默菴). 경상남도 단성 출신. 아버지는 종균(宗均)으로 3세 때 아버지와 사별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으며, 8세부터 18세까지 한학을 공부하였고 뒤에 사상의학도 수업하였다. 1900년에 한양으로 와서 정부개혁을 도모하는 단체에 가입하였다가 탄로나자 1905년에 북만주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3년 동안 살다가 귀국하였다. 1914년에 진주 거평동에서 황태익(黃泰益) 접주의 인도로 천도교에 입교하여, 이듬해인 1915년부터 일생을 마칠 때가지 교회활동에 헌신하였다. 1915년에는 천도교경상남도창녕군 전교사(傳敎師)로 활동, 경상남도 일대에 많은 포교를 하였으며, 1923년에는 천도교진주교구 종리사로 피임되면서 포교에 더욱 큰 성과를 거두어, 순원포(順源布) 주관포덕사(主管布德師)가 되었다. 1929년에는 천도교중앙총부결의기관의 종법사(宗法師)가 되면서 도사의 명예직을 받는 동시에 묵암이라는 도호도 받았다. 1931년부터는 중앙요직으로 진출하여 중앙종리원(中央宗理院) 상무종법사, 주관도정(主管道正) 법정(法正)이 되었으며, 1937년에는 중앙종리원 성도관정(誠道觀正)을 역임하였다. 1937년에는 천도교중앙종리원을 대표하는 도령(道領)이 되었다. 1954년에는 장로로 추대되었고, 1960년부터 5차에 걸쳐 천도교중앙총부 교령에 피선되어 오직 교회할동에만 헌신하였다. 일생을 통하여 외길을 걸어오면서 경상남북도에 천도교를 포교하였다. 일상생활은 천도교의 기본교의인 시천주(侍天主), 인내천(人乃天),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신조로 삼았으며, 장가갈 때 평등사상을 내세우면서 걸어갔다는 일화가 있다. 1963년 8월에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