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서울 출생. 1937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사과를 중퇴하고 혼인하여 가정주부로 생활하다가 1949년 홍익대학 미술학부 조각과에 입학, 1953년에 졸업하고 조각계에 진출하였다. 홍익대학에서는 윤효중(尹孝重)에게 지도를 받았다. 1955년 한미재단 장학금으로 미국에 건너가 미시시피주립대학 대학원에서 현대적 철조각을 연구하였다. 1956년 미시간주의 불룸필 힐즈 크랜부룩 미술대학 대학원에서 거듭 수학하고 1957년 잠시 귀국하여 모교의 교수로 취임하였다가 1958년 다시 도미하여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 미술연구소에서 2년간 산업디자인과 금속공예를 연구하였다. 작품활동은 1956년부터 시도한 철조(鐵彫) 추상조각을 비롯하여 대리석, 나무, 청동 재료의 추상, 반추상 작업으로 이어졌다. 창의적 반추상이나 자유로운 조형적 변용의 구상작업은 주로 여인상 주제와 새의 날개 또는 비상(飛翔) 이미지를 형상한 휴머니즘과 자연애, 생명애를 구현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누워 있는 여인'(1959, 호암미술관), '여인흉상'(1962), '자라나는 날개'(1971), 그리고 1970년대 후반부터 계속 연작된 '비상' 등이 그 계열이다. 순수형태의 추상작품들도 '삶'(1965), '봄의 움직임'(1967), '촛불'(1974), '반달'(1976) 등 대개 자연적인 심상의 주제성으로 지향되었다. 다만, 1970년대 전반기에 보여준 '토템', '어떤 모뉴먼트', '핵' 등은 대칭적 또는 건축적 공간구조의 조형미를 시도한 것이었으나 그뒤로 그 계열의 지속은 별로 없었다. 반면, 또다른 작품으로는 서울 YMCA와 YWCA 회관의 벽면부조(1964, 1968), 서울기독교연합회관 벽면부조(1969), '이율곡동상'(1969), '이승만동상'(1979, 1983), '박인덕동상'(1983) 등을 들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1957∼1991년 국전(國展)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1967년과 1975년 상파울루비엔날레 한국전권대표로 참가하였다. 1974∼1982년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 1983∼1987년 한국칠보작가협회 회장, 1983년까지 홍익대학교 교수 및 1984∼1991년 명예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1963년 문예상 미술부문, 1976년 국전 초대작가상, 1984년 중앙문화대상 예술상, 1985년 신사임당 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1982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