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자, 정치가. 호는 운정(芸庭). 충청남도 공주 출신. 고향에서 한학을 배운 뒤 192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해 경성제국대학에 입학, 예과를 수료하고, 1930년 동대학 법문학부 조선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그해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를 거쳐 19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전임하여 9년간 유학 등을 가르쳤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중에 대전으로 내려왔다. 그동안 아버지 보영(普永)이 마련한 독립군의 군자금을 인천부두에서 상해임시정부의 밀사에게 전달하였고, 이왕직(李王職)이 위촉한 조선음악서 편찬을 맡았으며 아악에 조예가 깊었다. 1945년 광복 후 대전보문중학교를 설립, 초대교장에 취임하였고, 다음해 국학대학 교무처장, 1948년 제헌국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1952년 충청남도지사로 취임하고 충남대학교 총장서리를 겸하여 2년간 농촌소득증대와 초창기 충남대학교 부지 선정과 건물 신축에 주력하였다. 1955년 충청남도 향교재단 이사장, 1966년 대한적십자사 충청남도 지사장, 1968년 성균관 이사장, 1970년 성균관장으로 선출되어 6년간 한국 유림(儒林)의 대표직에 있었다. 성균관장 재임중에 유교의 생활화, 현대화를 표방, 민족의 얼을 바탕으로 경전을 현대적으로 해석, 실천하여야 한다 하여 성, 경, 애정신(誠, 敬, 愛精神)을 기초로 하여 윤리선언을 공포하였다. 1980년 한국공자학회장을 역임하였다. 196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고, 1974년 대만 문화대학(文化大學)과 1982년 충남대학교로부터 각각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보문산에 있는 송병선(宋秉璿) 순국비문 등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