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문정창(文定昌)
  • 남평문씨(南平文氏),  출생~사망 : 1899 ~ 1980
역사학자. 호는 백당(柏堂). 부산 출생. 동래 동명중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23년 동래군 서기를 거쳐 경상남도 도청, 조선총독부에 근무한 뒤, 1940년 충청북도 사회과주사, 1942년 황해도 은율군수, 1944년 황해도 사회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관직생활을 하면서 조선총독부가 간행하는 조선 조사자료총서의 하나인 '조선의 시장 朝鮮の市場'(1941)과 '조선농촌단체사 朝鮮農村團體史'(1942) 등을 저술하였다. 8, 15 광복으로 황해도가 인민공화국 치하에 들어가자 월남하여 남한에서 한때 조선농회(朝鮮農會) 총무부장에 있기도 하였으나 1947년 개인사업으로 전업하면서 저술활동을 하였다. 먼저 일제침략사연구에 몰두하여 '근세일본의 조선침탈사'(1964)와 '군국일본 조선강점 삼십육년사' 상(1965), 중(1966), 하(1967)를 발표하였으며, 일제의 한국사 왜곡에 관심을 가져 상고사연구에 정진하여 '단군조선사기연구 檀君朝鮮史記硏究'(1968), '고조선사연구 古朝鮮史硏究'(1969), '일본상고사 日本上古史'(1970), '한국고대사 韓國古代史' 상, 하(1971), '한국사의 연장 : 고대일본사'(1973), '백제사 百濟史'(1976), '이병도(李丙燾)저 한국고대사연구평'(1976), '광개토대왕훈적비문론 廣開土大王勳績碑文論'(1977), '가야사 加耶史'(1978), '한국-슈메르 이스라엘의 역사'(1979) 등을 저술하였다. 이러한 한국사연구는 일제식민사학에 대한 기성 사학계의 도전이 불충분하다고 믿고 독자적인 고대사연구를 시도한 것이나 그 뿌리는 일제하의 재야사학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광복 후까지 이끈 재야사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1976년 10월 8일 이유립(李裕○), 안호상(安浩相), 유봉영(劉鳳榮) 등과 '국사찾기협의회'를 결성하여 국사바로잡기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