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
  • 경주김씨(慶州金氏),  출생~사망 : ? ~ 979
신라 제56대 왕. 재위 927∼935.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부(傅). 문성왕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신흥대왕(神興大王)으로 추봉된 효종(혹은 효종이 할아버지라는 설도 있음.)이며, 어머니는 헌강왕의 딸인 계아태후(桂娥太后)이며, 할아버지는 의흥대왕(懿興大王)으로 추봉된 관○(官○)이다. 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 슬하에 아들이 있었다. 큰아들은 마의태자(麻衣太子) 이고 막내아들은 범공(梵空)이다. 고려에 항복한 뒤에 왕건의 장녀 낙랑공주(樂浪公主)와 다시 결혼하였다. 927년 포석정에서 놀고 있던 경애왕이 견훤의 습격을 받아 시해되고 난 다음, 경순왕은 견훤에 의해 옹립되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난폭한 견훤 보다 오히려 왕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931년 왕건의 알현이 있었는데 수십일을 머물면서 왕건은 부하군병들에게 정숙하여 조금도 범법하지 못하게 하니, 왕경의 사녀(士女)들은 전번 견훤이 왔을 때에는 시랑과 범을 만난 것 같았으나, 이번 왕건이 왔을 때에는 부모를 만난 것 같다고 하였다. 935년 그는 신하들과 더불어 국가를 고려에 넘겨줄 것을 결의하고 김봉휴(金封休)로 하여금 왕건에게 항복하는 국서를 전하게 하였다. 이때 마의태자는 고려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였고, 범공은 머리를 깎고 화엄사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그가 백료를 거느리고 고려에 귀의할 때 향거(香車)와 보마(寶馬)가 30여리에 뻗쳤다. 왕건은 그를 정승공(正承公)으로 봉했는데, 그 지위는 태자의 위였다. 왕건은 또 그에게 녹(祿) 1, 000석을 주고 그의 시종과 원장(員將)을 모두 채용하였으며, 신라를 고쳐 경주 라 하고 그의 식읍(食邑)으로 주었으며, 그를 경주의 사심관(事審官)으로 삼았다. 무덤은 장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