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연수(金埏洙)
  • 울산김씨(蔚山金氏),  출생~사망 : 1896 ~ 1979
삼양사 설립자. 중앙학교(中央學校) 설립자의 한 사람. 아명은 판흥(判興). 호는 수당(秀堂).

전북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인촌마을에서 아버지 김경중(金暻中)과 어머니 장흥고씨(長興高氏) 사이의 십남매 가운데 일곱째로 태어났다. 위로 네 형과 두 누이가 있었으나 넷째형인 김성수(金性洙)와 맏누이를 제외하고 모두 어려서 죽었으며, 김성수는 큰아버지인 김기중(金祺中)에게 출계하였다. 15세에 결혼한 박종주(朴鳳柱)의 딸 박하진(朴夏珍)과의 사이에 김상준(金相駿), 김상협(金相浹: 전 국무총리) 등 6남7녀를 두었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고향에서 영신학교를 마쳤다. 그뒤 일본에 유학하여 동경의 아사부중학교(麻布中學校)와 경도제삼고등학교(京都第三高等學校), 경도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였다.

1924년 삼수사를 설립하여 장성에서 농장경영에 착수한 뒤, 줄포(茁浦), 고창, 법성, 영광, 함평 등지에서 농장을 경영하였다. 1931년 삼양사(三養社)라고 개칭하고, 1935년에는 김성수가 중심이 되어 세운 경성방직의 제2대사장에 취임하였다. 삼양사를 모기업으로 하여 염업, 제당업, 제빙업, 방적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실업인이었지만 김성수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육영사업에 적극적이었다. 1929년에는 중앙학교(中央學校) 설립자의 한 사람으로 추가되었으며,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의 재건에도 참여, 지금의 고려대학교와 중앙고등학교로 발전시켰다. 1939년에는 장학재단 양영회(養英會), 1968년에는 수당장학회를 설립하여 활발한 장학활동을 하였다. 1971년에는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