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호는 석제(石濟). 경상남도 함안 출생. 조문태(趙文台)와 김복선(金福善)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38년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를 졸업, 시동인지 '아 芽'(1938), '시림 詩林'(1939)에 참여하면서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1940년 만주 하얼빈에 잠시가 있다가 귀국하여 혜화전문학교(惠化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 1941년 학생사건에 연좌되어 중퇴하고 1945년 '예술부락 藝術部落'을 주재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비평활동을 시작하였다. 1946년 좌익계 문학가동맹(文學家同盟)측에 정면으로 맞서 김동리(金東里), 서정주(徐廷柱) 등과 함께 청년문학가협회(靑年文學家協會)를 결성하였다. '민주일보', '민중일보', '민국일보' 등 신문사에서 기자나 편집국장으로 근무하면서 민족진영 문화단체의 총본산인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全國文化團體總聯合會)결성의 산파역을 맡았다. 이후 문예지 '문학정신 文學精神'을 주재하면서, 이때부터 문학가동맹측의 문인들과 민족문학론(民族文學論)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전개, 순수문학(純粹文學)을 적극 옹호하는 평론을 발표하였다. 1948년 문예사(文藝社) 편집장을 맡고, 한국문학가협회(韓國文學家協會)발족에 참여하였다. 1953년 한국문학가협회 평론분과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54년 예술원 회원으로 선임, 1955년 '현대문학 現代文學'을 창간하면서 주간을 맡았다. 1956년부터 대학교단에 섰으며, 동국대학교 교수, 한양대학교 문과대학장을 역임하고, 서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수도여자사범대학, 숙명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였다. 또한, 70년대 이후 문단의 여러 기구에 참여하여 예술문화윤리위원장, 문학평론가협회장, 예술원 문학분과위원장, 펜클럽한국본부 부위원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비평가로서 활동은 광복 후의 활동에서 두드러지는데, 1948년 처녀평론집 '문학과 사상'을 발간한 이래로 우익 민족문학론의 선두에 섰으며, 탁월한 인상비평(印象批評)의 새 영역을 구축하고 또한 순수문학론적 입장에서 전통을 적극 옹호하였다. 한편, 갑오경장 이후의 신문학사를 정리, 체계화한 '한국현대문학사 韓國現代文學史'(1961)는 백철(白鐵)의 '신문학사조사 新文學思潮史'(1947, 1949)와 더불어 한국현대문학사를 개척해놓은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업적에 따라 대한민국 문화포상(1963), 제4회 문교부 문예상 문학부분상(1965), 제11회 예술원상(1966), 국민훈장 동백장(1970), 3, 1문화상(1972) 등을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조연현문학전집'(1977), '문학과 사상'(1948), '문학개론'(1951), '한국현대작가론 韓國現代作家論'(1952), '문학적 인생론'(1959), '한국현대문학사'(1961), '여백(餘白)의 사상'(1962), '문학과 생활'(1964), '한국신문학고 韓國新文學考'(1966), '문학과 사회'(1973) 등 20여권이 있다. 주요평론으로는 '논리(論理)와 생리(生理)'(白民 10호, 1947. 9.), '근대조선소설사상계보론서설'(신천지, 1949. 8.), '현대의 위기와 문학정신의 방향'(자유세계 5호, 1952. 8.), '한국해방문단의 10년사'(문학예술 2호, 1954. 6.), '문학논쟁 그 행방'(서울신문, 1965. 9. 14. ∼11. 6.), '문학평론 60년의 문제들'(신동아, 1968. 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