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자, 한학자, 교육자. 호는 우암(愚庵). 승모(承模)의 아들로 평안남도 중화(中和) 출신. 8세 때 한문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1919년에는 한학선생을 따라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23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데 이어, 1928년 동경 니혼대학 전문부 예술과에 입학하고, 1931년 북경 중국대학 철학교육과에 입학하였다. 1935년 동경 릿쿄대학(立敎大學) 종교연구과에 입학, 1936년 와세다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창조적 상대성원리'를 논문으로 내었다. 그해 윤길주(尹吉珠)와 결혼하였다. 1938년 이후 경성상업실천학교, 봉천남만공업학교, 배재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연희대학교, 고려대학교에 출강하였다. 1949년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취임하여 중국철학을 강의하고, 성균관대학교, 서울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다. 1965년 한일협정비준반대교수회 회장단에 피선되었던 일로, 이듬해 고려대학교를 떠났다가 1968년 복직하였다. 광복 이후 활동한 동양철학자의 첫 세대에 속하며, 많은 선도적 논문과 저술을 내었다. '창조적 상대성원리'에 이어 '태극의 원리', '유생(唯生)철학의 근본문제', '유교철학사상개요', '선진명학파(先秦名學派)의 사상', '대학석의 大學釋義', '율곡의 연구', '존재여생성 存在與生成', '율곡 성리학전서', '이조실학파의 성리학설', '노자의 도', '훈민정음을 통하여 본 생성학적 역(易)의 사상', '중국철학개론' 등의 저술이 있고, 시집 '연'이 있다. 번역서로도 '문화학개론', '대학', '중용', '논어', '맹자', '노자', '열자', '장자' 등이 있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 입장에서 중국철학을 '생성철학(生成哲學)'으로 파악하여 관념적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모든 현상을 변화의 생성원리로 설명하였다.이 원리는 '노자'와 '주역' 등 중국고전의 사상에 기초하면서, 논리적으로는 'A는 비(非)A로 된다.'는 화합원리라 제시한다. 모순과 대립의 이론을 부정하고 화합과 성장을 추구하는 철학적 입장을 보여준다. 그의 학문적 관심은 유학, 노장학, 제자학 및 한국사상으로 폭넓게 확산되며, 고전의 독특한 해석은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고전해석에 깊이 적용시킨 것을 말한다. 그에 있어서 생성철학의 관철은 중국철학의 방법론적 체계화를 추구한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현상윤, 이상은과 함께 광복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의 동양철학학풍을 이끌어왔던 인물로, 중국철학분야의 개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