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교의 중진, 순교자. 호는 염재(念齋). 전라남도 보성 출신. 초대교주인 나철(羅喆)의 큰아들이며, 임오교변(壬午敎變)때 같이 순교한 나정문(羅正紋)의 친형이다. 어렸을 때부터 한학을 수업하였고, 가업에 종사하다가 1914년 만주의 연길현 의란구(延吉縣依蘭溝)로 이주하여 1922년 밀산현 당벽진(密山縣當壁鎭)으로 이주할 때까지 8년 동안 구룡학교(九龍學校)의 교장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독립정신과 민족혼을 고취하는 한편 계몽, 교육사업에도 힘썼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기밀참모로서 군자금조달, 군량미보급, 의병모집 등에 헌신하였다. 1909년 1월 대종교가 처음 조직될 때 곧 입교하였으며, 1922년 당벽진으로 이주한 뒤로는 시교원(施敎員)으로서 일반교인들을 인도하는 일에 힘써 근 20년 동안 교세확장에 진력하였다. 1941년 총본사가 있는 영안현 동경성(寧安縣東京城)으로 이주하여 경의원참의(經議院參議) 등 총본사의 중책을 맡아 활약하던 중 1942년 11월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그뒤 영안현서를 거쳐 액하감옥(掖河監獄)에 구금된 지 9개월 만인 1943년 8월 옥중에서 순교하였다. 그뒤 교단에서는 그의 생전의 공적을 기려 1946년 8월 상교(尙敎)에서 정교(正敎)로 추승(追陞)함과 동시에 대형호(大兄號)를 추증하였다. 독립유공자로서 1968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