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7월 5일에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태어났다. 1920년 20세 때 나주공립보통학교를 중퇴하고 광주에 나와 목화, 즉 실면을 취급하는 장사를 시작하였으며 이어 잡화상을 시작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그뒤 목포에서 미곡상, 송정리에서 가마니 장사, 또 무명장사도 하였으나이 또한 실패하여 서울에 올라왔다. 상경 후 오성강습소에서 5개월, 중동학교에서 3개월을 수학하였다. 28세 때인 1928년 보통문관시험, 고등문관예시에 합격하였다.
1946년 2월 2대의 미국산 택시를 보유하고 광주여객자동차(주)를 경영하기 시작하였으며 1948년에는 2개 노선(광주∼장성, 광주∼담양)의 면허를 얻어 버스운수업을 시작하였다. 그뒤 운수, 제사(製絲), 타이어제조 등의 사업을 통해 오늘의 금호그룹을 일으켰다. 근면과 끈기를 경영이념으로 하여 기업을 이끌었으며 우리나라 여객운수업을 발전시킨 공로가 크다. 금탑, 석탑,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01년 7월 5일에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태어났다. 1920년 20세 때 나주공립보통학교를 중퇴하고 광주에 나와 목화, 즉 실면을 취급하는 장사를 시작하였으며 이어 잡화상을 시작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그뒤 목포에서 미곡상, 송정리에서 가마니 장사, 또 무명장사도 하였으나이 또한 실패하여 서울에 올라왔다. 상경 후 오성강습소에서 5개월, 중동학교에서 3개월을 수학하였다. 28세 때인 1928년 보통문관시험, 고등문관예시에 합격하였다.
1946년 2월 2대의 미국산 택시를 보유하고 광주여객자동차(주)를 경영하기 시작하였으며 1948년에는 2개 노선(광주∼장성, 광주∼담양)의 면허를 얻어 버스운수업을 시작하였다. 그뒤 운수, 제사(製絲), 타이어제조 등의 사업을 통해 오늘의 금호그룹을 일으켰다. 근면과 끈기를 경영이념으로 하여 기업을 이끌었으며 우리나라 여객운수업을 발전시킨 공로가 크다. 금탑, 석탑,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