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인, 관료, 기업인. 호는 우석(友石). 경상남도 함양 출신. 1939년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였고, 1972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경제학박사를 받았다. 일찍이 금융계에 투신, 1958년 농업은행 이사, 1961년 농업은행 총재를 거쳐 중소기업은행 행장을 지낸 다음 1963년 산업은행 총재를 지냈다. 제3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1963년부터 1964년까지 재무부장관의 책임을 맡았으며, 그뒤로는 관계를 떠나 경제단체와 사회봉사단체의 장으로 활동하였다. 1965년 방직협회 회장, 1967∼1973년 연세대학교 동문회장, 1967년 한양로터리클럽 회장, 1969년 대한생명 회장, 1970년 대한플라스틱 회장과 국제로터리 375지구 총재, 1971년 동아제분 회장, 1972년 한국 로터리장학문화재단 이사, 1973년 진우산업(進宇産業) 대표이사와 상업중재협회 이사 등을 거쳐 1975년 한국개발리스 대표이사를 지냈다. 만년인 1977년 금융제도심의위원회 위원장과 해외건설협회 회장을 지낸 다음 벽산(碧山)그룹 고문으로 일하였다. 한편, 1972년 이른바 유신체제의 출범과 함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저서로는 '아이디어 보고', '농업협동조합론'과 수필집 '민들레의 겁년' 등이 있다. 그는 금융인으로서는 드물게 여러 분야에서 정력적으로 일하였다. 제3공화국 초창기 기획원장관을 지낸 원용석(元容奭)과 함께 금융조합출신 대표적 인물의 한 사람이며, 동문회, 로터리클럽, 경제단체의 장 등 활동범위가 다채로웠다. 1983년 김인득(金仁得) 등과 함께 옥파문화재단(沃坡文化財團)을 만들어 독립운동의 선각자이자 33인의 한 사람인 이종일(李鍾一)의 논설집을 펴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