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학자. 자는 관경(寬卿). 호는 규원(葵園). 판관 기우(基雨)의 아들이며, 만조(萬朝)의 아우이다. 1882년(고종 19)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894년 동궁시종관이 되었다. 1896년 명성황후 시해의 음모를 미리 알고서도 방관하였다는 탄핵을 받아 제주도로 종신 유배되었고, 위도(蝟島)에 이배되었다가 1907년 특사로 풀려났다. 그뒤 중추원의 촉탁으로 '조선사 朝鮮史'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글씨도 잘 썼다. 특히, 시에 뛰어나 많은 가작을 남겼는데, 시는 일반적으로 평이한 시풍을 벗어나 화려하고 창신(創新)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 중 '개래매삼운구십오수 開來梅三韻九十五首'는 형 만조의 명으로, 같은 운자를 써서 95수의 절구를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저서에 '녹어산관집'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