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유창선(劉昌宣)
  • 강릉유씨(江陵劉氏),  출생~사망 : 1905 ~ ?
국어학자, 시인. 평안북도 의주 출생. 영수(永秀)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한정희(韓定希)이며, 국어학자 창돈(昌惇)의 형이다. 선천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와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거쳐(1929), 1933년부터 1936년 사이 일본 릿쿄대학(立敎大學) 사학과를 다녔다. 그의 업적은 향가와 '계림유사'의 해독을 통한 고대어연구, 속담연구, '용비어천가' 주해, 국어의 형성에 관한 연구 등 네 분야로 간추릴 수 있다. '신동아' 등에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학 재학시절부터 향가해독에 관심을 가져 오구라(小倉進平)와 양주동(梁柱東)의 연구를 기초로 졸업과 동시에 향가해독론을 펼쳤으며, 이러한 작업은 광복 후에도 꾸준히 계속되어 홍기문(洪起文), 정열모(鄭烈模)와 함께 북한 향가연구의 선도적 구실을 하였다. '신라향가의 해독 소고(小考)'(史苑 50)에서 '균여전'의 7수와 '삼국유사'의 9수를 중심으로 잘못 읽거나 잘못 풀이한 대목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균여전의 향가주석'(四海公論 2-11, 1936), '신라의 향가해석'(新東亞 5, 1936), '노인헌화가에 대하여'(한글 8-3, 1940)에서 더 구체적으로 전개되었으며, 광복 후에도 계속이 방면에 관심을 가져 '서사어(書寫語)로서의 향찰과 그 표현'(조선어연구 2-3, 1950), '신라향가의 독해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론의'(조선어문, 1956, 5호), '홍기문의저 향가해석에 대하여'(조선어문, 1958, 1호) 등 깊이 있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계림유사'에 대하여는 '계림유사 고려 방언고'(한글 6-3, 1938)에서 마에마(前間恭作)의 업적에서 풀리지 못하였거나 잘못 읽은 어휘의 해독을 시도하였다. 속담론은 '이언에 나타난 가족제도'(조광4-3, 1938), '조선이언의 윤리성'(조광 5-2)의 두 편이 있다. '용비어천가 주해'는 '조선어연구' 1949년도 발행호에 6회 연재하였는데 마에마 이후 우리 손으로 마련된 최초의 완결된 어학적 주석이다. 국어의 형성에 관한 연구는 '조선어에 있어서 종족어와 민족어의 구성에 관한 사론'(조선어연구 2-1, 1950)에서 전개되었는데, 유물사관에 근거하여 우리 민족의 종족어와 인민어의 형성문제를 다루었으며 고대 부족국가들의 언어는 종족어로, 삼국시대 세 나라의 언어는 인민어로 간주하는 태도를 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