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자. 호는 벽계(碧溪). 경상북도 성주 출생. 대구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중 학생맹휴사건에 연좌되어 퇴학당하였다. 이에 앞서 3, 1독립운동이 있었던 이듬해 가을 운동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만든 만국기가 문제가 되어 15일간의 구류, 문초 끝에 석방된 바 있다. 이때 그의 나이 14세로, 안동보통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진학의 길이 막힌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京都)에 있는 히가시야마중학교(東山中學校)를 거쳐 구마모토제5고등학교(熊本第五高等學校)를 졸업,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문학부 교육학과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였다. 경성고등상업학교 강사,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경성사범학교 교유, 만주제국 문교부 교학관(1944)을 지냈고, 광복 후에는 성균관대학교 부총장,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장, 문리과대학장, 대학원장, 숙명여자대학교 총장, 영남대학교 총장, 한국평생교육기구 이사장, 도산서원원장, 퇴계학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고, 대한민국학술원 원로회원, 한국교육학회 회장, 한국교육사, 교육철학회 회장으로서 한국현대교육학 정초자로서 크게 공헌하였다. 그의 교육사상은 첫째, 이상주의 교육철학의 입장을 주창하였다. 교육의 본질을 현실보다도 이상쪽에 서는 것이었다. 둘째, 교육적 인간론에 있어서는 인간이해와 개성의 신장을 중시하였다. 진정한 엘리트란 스스로의 자질과 능력이 빼어나 한 사회의 지도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정선된 사람을 말한다고 하면서, 엘리트 즉 '대학'식의 허상을 물리쳤다. 셋째, 전문직으로서의 교직관을 강조하는 동시에 교육제도로서 6, 3, 3, 4 단서형을 강조하였다. 국민교육헌장 기초위원으로서 민주적 국민교육관의 보급화에 힘썼으며,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영남대학교에 교육학과를 창설하여 교육학도 양성에 공헌한 바 크다. 저서로는 '민국(民國)의 교육정신(敎育精神)과 학제개혁(學制改革)'(1950), '교육(敎育)과 시상(時想)'(197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