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 호는 금계(琴溪). 경상남도 울산 출신. 관립 경성고등보통학교를 나온 뒤 1919년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廣島高等師範學校)를 졸업하고 1922년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철학과를 수료하였다. 1965년 경희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를 받았다. 1920년대초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드물게 대구사범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1922년 수원고등농림학교 강사, 1939년 경기고등여학교 교장 등을 거쳐 광복 후인 1952년 경북대학교 교수, 법정대학장 겸 교학처장 등을 지냈고, 1952년부터 1957년 사이 울산농업고등학교와 대전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5, 16혁명 후인 1961년 잠시 한양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교직에서 떠난 뒤 1965년 단군정신선양회회장, 신라오릉보존회(新羅五陵保存會) 총재, 1966년 반공연맹 이사장, 1970년 공산권문제연구소 이사장, 1971년 현정회(顯正會) 이사, 1972년 대한노인회 회장 등을 맡았다. 한편, '인간혁명론', '북한의 농민', '북한의 노동자', '북한의 가정과 부녀자', '현대한국반공투쟁사', '국민독본'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1966년에서 1980년에 이르는 15년간 반공연맹 이사장을 줄곧 연임하는 가운데, 당시의 정권이 통치원리를 삼아온 안보우선논리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데 몰두하였다. 말년에는 부산에 내려가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