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최두선(崔斗善)
  • 동주최씨(東州崔氏),  출생~사망 : 1894 ~ 1974
제8대 국무총리. 교육가, 언론인, 정치가. 호는 각천(覺泉). 서울 출신. 최남선(崔南善)의 동생이다.

휘문의숙(徽文義塾)을 거쳐 1917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63년 고려대학교, 1968년 와세다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성수(金性洙)를 알게 되어 1918년 김성수가 경영하던 중앙고등보통학교 학감에 취임, 다음해에 교장이 되었다. 1922∼1925년까지 독일의 마부르크대학, 예나대학, 베를린대학에서 수학하고, 다시 중앙학교 교장으로 일하다가, 1932년 보성전문학교 상무이사에 취임하여 그 운영을 맡았다. 1938년 교육계를 떠나 경성방직주식회사 상무이사에 취임하고 광복과 함께 사장이 되었다. 1947년 동아일보사 사장에 취임, 1963년까지 16년 동안 재직하면서 '동아일보' 육성과 언론창달에 크게 공헌하였다. 동아일보사 사장 재직 중인 1960년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활약하였고, 또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취임, 1972년까지 일하였다. 이듬해에는 정부의 친선사절로 미국 조야와 교류하였고, 그해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활동하였다.

제3공화국의 초대국무총리에 취임하여 민정이양 후의 민심수습에 진력하였으나, 대일굴욕외교반대 등 난국에 부딪혀 6개월 만인 1964년 5월 퇴진하였다. 그해 서독정부 초청으로 서독을 방문하였고, 다시 경성방직주식회사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1965년 대통령특사로서 친선외교사절단을 이끌고 아프리카 9개국을 순방하였다. 1970년 국토통일원 자문위원에 위촉되고, 한독회장에 취임하였다. 또, 1971년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1000만이산가족찾기운동을 북한적십자사에 제의하여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을 실현시켰다. 청조소성훈장과 국민훈장무궁화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