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나혜석(羅蕙錫)
  • 나주나씨(羅州羅氏),  출생~사망 : 1896 ~ 1948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양화가. 호는 정월(晶月). 한말에 사법관을 거쳐 군수를 지낸 나기정(羅基貞)의 5남매 중 둘째딸로 수원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진명여학교를 졸업하고, 1913년에 신미술인 양화를 전공하기 위하여 동경의 여자미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1918년에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돌아와 잠시 정신여학교 미술교사를 지냈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여 5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1921년 경성일보사 내청각(來靑閣)에서 첫 유화개인전을 가졌으며, 4월에는 제1회서화협회전람회에 홍일점으로 유화를 출품하였다. 1922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 해마다 작품을 출품하여 수상과 특선을 거듭하였으며, 1931년에는 동경의 제국미술원전람회에서도 입선하였다.

1927년에는 만주 안동현(安東縣) 부영사로 일본정부 외교관신분이던 남편 김우영(金雨英)과 함께 세계일주여행에 올라 파리에서 약 8개월간 머무르면서 야수파계열의 화가가 지도하던 미술연구소에서 수업하였다. 이어 유럽 각국의 미술관순례를 통해서 미술시야를 넓히고, 미국을 거쳐 1929년에 귀국하였다. 그뒤 화가로서의 정상적 활동은 1935년 서울에서 가졌던 소품전을 마지막으로 중단하고, 이혼과 정신장애, 반신불수의 비극 속에서 세상의 버림을 받다가 생애를 마쳤다.

작품경향은 크게 2기로 나눌 수 있는데, 파리에 가기 이전에는 주로 사실적인 수법으로 인물과 풍경을 그렸으며, 그뒤로는 야수파와 표현파 등의 영향을 받아들인 한결 참신한 수법을 보였다. 그밖에 문재(文才)도 뛰어나 많은 문필업적을 남겼으며, 동경 유학 때부터 여권신장의 글을 발표한 여권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였다.
대표작으로 파리에서 그린 '무희'(국립현대미술관 소장)와 '스페인해수욕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