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순석(李順石)
  • 광주이씨(廣州李氏),  출생~사망 : 1905 ~ 1986
석공예가, 디자인교육자. 호는 하라(賀羅). 충청남도 아산 출생. 1925년 일본에 가서 동경미술학교 도안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가진 도안개인전은 한국최초의 디자인전이 된다. 화신백화점 광고선전과장으로 근무하다가 개인작업실을 차려 공예를 연구하여 각종 재료의 공예작품을 시도하였고, 광복 후부터는 본격적인 석공예 창작에 전념하였다. 1946년 미군정 문교부문화국 예술과 고문으로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창설의 산파역을 담당하여, 신설된 도안과 주임교수를 맡고 정년퇴임(1970) 때까지 후진양성에 힘썼다. 1953∼1975년(제2∼24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14차례), 운영위원을 역임하며 국전 공예부를 주도하였고, 6, 25동란 때는 국방부정훈국 기획전문위원, 종군화가단 단장을 역임하였다. 1966년에 한국디자인센터와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를 탄생시켜 디자인센터의 소장, 이사장, 상임고문과 상공미전 심사위원(9차례)을 역임하면서 현 한국디자인포장센터와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의 기틀을 다져놓았다. 그밖에 서울시문화위원, 한국미술협회부이사장, 세계공예회의총회위원, 현대미술관운영위원, 서울가톨릭미술협회장, 예술원회원 등으로 활약하였고, 서울시문화상, 최고회의의장표장, 문화훈장대통령장, 문화예술대상본상(대통령상), 예술원상, 국전초대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작품활동은 주로 국전, 상공미전, 가톨릭미술협회전을 통하여 전개하였으며, 7차례 개인전(제2회까지 도안전, 제7회는 일본동경전)을 가진 바 있다. 중요초대전(전국공예가초대전, 한국현대공예대전, 1982∼1985현대미술초대전, 1986현대한국미술상황전 등)에도 빠짐없이 출품하였고, 1984년부터 한국공예가회전에 고문으로 출품하였다. 그는 주로 동물(곰, 두꺼비, 새, 물고기 등)을 소재로 한 실용성 높은 대리석재의 정원, 실내용품을 가장 많이 만들었으나 기념비적 석조작품(유관순, 화랑, 해태상 등)도 남겼고, 특히 철저한 가톨릭신자(세례명 바오로)로서 많은 종교미술품을 남겼는데, '명상의 길', '십자가의 길' 등(1975∼1977년작, 부산 성분도수녀원 소장)의 부조작품은 대표적인 것이다. 만년에는 하라석공예연구원을 운영하지만, 근 10년 동안 병고에 시달렸다. 공예, 상업미술, 장식미술, 종교미술 등에 걸친 3, 000여점의 작품 중 그의 창의와 열정, 신앙이 가장 잘 표출된 것은 1, 000여점의 석공예작품들이다. 외롭게 석공예에 정진, 국내산출 석재 중 쓸만한 석재를 발굴해내어예술품으로 승화시킨 그의 굳건한 의지와 작품은 독보적인 것이었다. 산업디자인, 공예의 발전에 헌신하며 한국현대디자인의 태동기, 격변기를 이끌었던 지도자, 개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