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박득순(朴得錞)
  • 영해박씨(寧海朴氏),  출생~사망 : 1910 ~ 1990
서양화가. 호는 소성(素城), 소리(素里). 함경남도 문천 출생.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림에 열중하기 시작하다가 1934년 일본 동경(東京)의 다이헤이요미술학교(太平洋美術學校)에 입학하여 유화를 전공하였다. 조병덕(趙炳悳)과 최재덕(崔載德)이 미술학교 입학동기생이다. 1938년 졸업한 뒤 고향에 머무르다가 다음해 서울로 가서 당시 경성부(京城府:지금의 서울시청) 도시계획과에 근무하며 그림을 담당하였다. 그러면서 1941∼1944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에 소녀상 주제의 작품들이 입선을 거듭하였고, 1942년의 '소녀 좌상'은 특선에 오르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특출하게 객관적 사실주의 역량이 발휘된 것이다. 그 밖에 1940년에 조직된 다이헤이요미술학교 동문단체인 PAS동인전 참가와 1943년 선전(鮮展:조선미술전) 특선작가신작전 초대출품 등으로 주목을 사면서 각광을 받았다. 광복 후 1947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1949년 제1회 국전(國展) 때에는 서양화부 추천작가로 참가하였다. 이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역임하며 두드러진 사실적 묘사력과 서정적 표현수법의 여인상과 초상화, 자연풍경을 많이 그렸고, 꽃과 과일을 소재로 삼은 정물화도 즐기면서 건강하고 능란한 작품활동을 보여주었다. 6, 25 중에는 국방부 종군화가단 단장으로 활약하며 전선(前線) 스케치의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1955∼196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1958년 목우회(木友會) 창립회원, 1974년 한국신미술회 창립회원 및 회장, 1961∼1965년 수도여자사범대학 교수, 1966년 상명여자사범대학 교수, 1972∼1976년 영남대학교 교수 및 예술학부장, 1978∼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1972년 대한민국예술원상 미술부문, 1986년 함경남도 문화상, 1989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예술문화대상 미술부문 등을 수상하였으며, 1982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