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오지호(吳之湖)
  • 동복오씨(同福吳氏),  출생~사망 : 1905 ~ 1982
서양화가. 본명은 점수(占壽). 전라남도 화순 출생. 한말에 보성군수를 지낸 재영(在永)의 막내아들이다. 부유한 지주 집안의 여건으로 전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서울로 가서 휘문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1924년에 졸업하고 일본의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유학하여 1931년에 졸업하였다. 그 직후 서울에서 한때 김주경(金周經) 등과 양화단체 녹향회(綠鄕會)동인이 되어 사실적 자연주의 수법의 유화를 발표하였고, 1935년 무렵부터는 김주경과 함께 프랑스 인상파 작풍의 신선하고 밝은 색채 구사로 한국의 자연미와 풍정미 표현에 열중하였다. 그와 아울러 색채미와 빛의 표현을 본질로 한 순수회화론을 주창하기도 하였고, 1938년에 자비로 출판한 '오지호, 김주경 2인화집'은 한국양화사의 인상파 존재를 선명히 한 것이었다. 8, 15광복 후 1948년부터 광주에 정착하여 조선 대학교 미술과 창설에 참여하여 1960년까지 교수로 재직하였고, 호남지역 양화계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년기 이후의 작품활동에서는 인상주의 미학을 소화한 독자풍의 생동적인 필치로 풍부한 색채현상의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말년에는 유럽여행(1978, 1980)의 감흥을 분출시킨 분방한 필치의 작품도 많이 남겼다. 1960년 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國展)추천작가,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하였고, 1976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73년에 국민훈장 모란장, 1977년에는 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작품활동 이외에 자신의 예술이념과 사상을 이론적으로 발언한 '구상회화 선언'(1959) 등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고, 1968년에는 논문집 '현대회화의 근본문제'를 출판하였다. 1982년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한 뒤 미망인이 유작 34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사과밭'(1937), '추광 秋光'(1960), '항구'(198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