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상욱(李相昱)
  • 전주이씨(全州李氏),  출생~사망 : 1928 ~ 1988
서양화가, 판화가. 함경남도 함흥 출생. 함흥상업학교를 거쳐 1942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경(東京)의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45년 광복을 함흥에서 맞이하였으나 38선 이북 소련군 점령하의 공산주의 체제가 굳혀져가자 1947년 남한으로 탈출하여 서울에 정착, 한때 동양외국어학교 불어과에 다니다가 단국대학 법정과에 입학하여 1952년 졸업하였다. 그사이 화가로서의 작품생활도 계속하여 1949년 제1회 국전(國展) 서양화부에 '장독'과 '누드'가 입선하기도 하였으나, 다음해의 6, 25 발발, 그리고 생활고 및 중고등학교 미술교사 생활의 여건 등으로 작가활동이 여의치 못하였다. 그러다가 1957년부터 국전에 다시 참가, 1959년까지 '노방군상 路傍群像', '샘터 있는 마을', '해동 解凍' 등이 연이어 입선하였으나, 그 운영의 보수성을 비판하면서 그뒤에는 외면하였다. 반면, 1959년에는 현대적 미술운동을 표방하였던 신조형파전(新造型派展)에 가담하였고, 1960∼1969년에는 조선일보사 현대작가초대전에 참가하여, 심의적인 형상추구의 추상작품을 발표하였다. 또, 1958년에는 한국판화협회 결성에 동참하여 이후 판화가로서의 뚜렷한 활약을 보였다. 1958년 미국 신시내티미술관 국제석판화전 출품, 1968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 창립회원, 1970년 동아일보사 주최 제1회 동아국제판화비엔날레 초대출품 및 심사위원, 그밖에 1972년 이탈리아 국제목판화 트리엔날레, 1983년 유고슬라비아 류블랴나 국제판화 비엔날레, 1985년 스위스 국제원색판화 트리엔날레 출품 등의 판화활동과 서울에서 거듭된 개인전에서도 많은 판화작품을 발표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의 국내외 중요미술전 초대참가는 거의가 석판화작업으로 이루어졌다. 그 형상성은 서법적(書法的)인 생동감과 속도감의 공간구성으로 독특한 내면성을 창출한 것이었다. 1966∼1978년 홍익대학, 1968∼1979년 상명여자대학에 출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