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자, 사회사업가. 자는 중극(重克). 호는 해관(海觀). 아버지 인묵(仁默)과 어머니 한산이씨(韓山李氏) 사이의 장남으로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8세부터 한학을 공부하여, 상경 후 내부주사(內部主事)를 지냈으나 개화의 물결로 1896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협성회(協成會), 독립협회, 만국공동회 간부로 활약하다가 일제에 의해 체포령이 내려져 피신하면서 공주, 논산, 군산 등지에서 선교사의 개인교사를 하였다. 1902년 미국유학을 하여 센트럴대학 교양학부를 수료하고, 켄터키주 루이빌의과대학에서 수학하고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07년 루이빌시립병원 인턴으로 들어가 6개월간 피부과를 전공하였고, 같은해 10월 미국남장로회선교부로부터 한국파견 선교사자격을 얻어 6년 만에 귀국, 전라북도 군산 야소병원장에 취임하여 본격적인 의료봉사사업을 시작하였다. 1909년 군산에 영명중학교(永明中學校)를 설립하여 교장직을 맡아가며 청소년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구암교회도 설립하였다. 1910년 봄, 군산을 떠나 전라남도 광주로 가서 광주야소교병원장에 취임하고, 1911년에는 목포야소교병원장으로 전임하여 목포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교장직도 겸임하였다. 1912년에는 남장로회 선교부 대표자격으로 세브란스의학교 조교수 겸 진료의사로 취임하였는데, 이는 한국인 교수로는 첫 등용이었다. 1916년 4월부터 1년간 일본 동경제국대학 의학부에서 피부비뇨기과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피부과를 신설하여 과장 겸 주임교수로 피임되었다. 1919년에는 경성보육원(京城保育員)을 설립하여 고아양육사업을 시작하고, 1934년 2월에 에비슨 교장 후임으로 제2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였으며, 교장취임을 축하하는 명예이학박사와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미국 센트럴대학과 루이빌대학에서 각각 받았다. 1942년 1월 일제의 압력으로 교장직을 사임한 뒤로 보육사업에만 전념하였다. 광복 후에는 관계진출의 권유를 뿌리치고 안양기독보육원장으로서만 진력하였는데, 그간 조선피부비뇨기과학회 명예회장, 대한성서공회이사장, 기독청년회이사, 서울여자의과대학 재단이사 등을 지냈으며, 구황실재산관리총국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서울특별시 시민보건위생공로감사장, 민간사회분야 사회사업공로표창, 대한의학협회 의학교육공로표창, 정부의 공익포장(公益褒章), 새싹회의 소파상(小波賞) 등을 수상하였다. 죽은 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