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최승구(崔承九)
  • 해주최씨(海州崔氏),  출생~사망 : 1892 ~ 1917
시인. 호는 소월(素月). 경기도 시흥(始興) 출생. 아버지는 대현(大鉉)이다.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를 거쳐 1910년경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대학(慶應大學) 예과과정을 수료하였다. 처음에는 사학(史學)을 전공하려고 하였으나, 학비난에다 폐결핵까지 겹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 당시 전라남도 고흥군수로 있던 둘째형 승칠(承七)의 집에서 요양하다가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사하였다. 재기발랄하고 다정다감한 그의 시재(詩才)는 일찍이 최남선(崔南善)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또 시작 뿐만 아니라 연극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직접 극본을 써서 연출, 연기를 맡아 하기도 하였다. 그의 문단활동은 일본유학 당시 '학지광 學之光'의 편집에 참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일제치하의 울분과 저항정신을 고취한 시 '벨지엄의 용사'를 1915년 '학지광' 제4호에 발표하는 한편, '정감적 생활(情感的生活)의 요구', '남조선의 신부(新婦)' 등의 수필과 평문류(評文類)를 역시 '학지광'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밖에 시작품으로는 유고시집(遺稿詩集)노트에 실려 있는 시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벨지엄의 용사' 이밖에 '종 鐘', '사랑의 보금자리', '박사 왕인(博士王仁)의 무덤', '나의 고리(故里)', '불여귀 不如歸' 등 25편을 남기고 있다. 이들 시편들은 대체로 그 이전의 개화기 시가들에서 보이는 집단적이고 민중적인 발상법과는 달리, 주정적(主情的)이고 개아(個我)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보월 步月'과 '조(潮)에 접(蝶)'을 비롯한 일련의 시작들에 나타난 서정성, 즉 감상(感傷)과 향수를 기조로 한 낭만적 속성은 당시 '민족주의'를 표방하였거나 아니면 그것을 주제로 하여 직설적이고 웅변적인 어조로 노래하고 있는 개화기 시가보다는 한층 진전된 단계의 것으로 간주된다. 한마디로 최승구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로부터 주요한(朱耀翰)의 '불놀이' 등 일련의 시작에 이르는 한국 근대시사에서 중간적 위치를 차지하면서 시적 전환을 보여주고 있는 시인으로서, 그가 담당한 과도기의 교량적 구실은 우리의 근대시사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평가된다. 유저로는 1982년에 간행된 '최소월작품집 崔素月作品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