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영문학자. 호는 월파(月坡). 경기도 연천 출생. 아버지는 기환(基煥), 어머니는 나주정씨(羅州丁氏)이며, 시조시인 오남(午男)은 여동생이다. 1917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여 1921년에 졸업하였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1927년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이듬해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의 탄압으로 영문학 강의가 폐강되어, 1943년 교수직을 사임하였다. 광복 후 군정하에서 강원도 지사로 임명되었으나 곧 사임하고 이화여자대학 교수로 복직하였다(1945).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하고 1949년에 돌아왔다. 최초의 문단활동은 1926년 '동아일보'에 시 '일어나거라'를 발표하면서 출발하였고, 그뒤 '이날도 앉아서 기다려 볼까', '무상 無常', '그러나 거문고 줄은 없고나' 등을 계속 발표하였으나, 이때 발표한 창작시는 미숙한 것들이었다. 그의 시가 평단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35년 '시원 詩苑'에 '나', '무제 無題', '마음의 조각' 등 몇 편의 가작을 발표하고 나서부터이다. 일반적으로 그의 작품세계는 자연을 가까이하려는 단면을 드러내며 그와 함께 대상을 따뜻한 마음씨로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진다. 1939년 시집 '망향'을 간행하였다. 일본의 탄압과 수탈에 대하여 소극적인 대응태세로 보이는 자연귀의의 정신경향이 나타난다. 대표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서는 자연 속에 묻혀 살면서도 그 속에서 생을 관조하는 단면이 엿보인다. 대표작으로는 '노래 잃은 뼈꾹새', '어미소', '향수'를 꼽을 수 있다. 광복 후 수필집 '무하선생방랑기 無何先生放浪記'를 간행하여 과거의 관조적인 경향보다는 인생과 사회에 대한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안목을 보여주었다. 또한, 영문학자로서 포(Poe, E. A.)의 '애너벨리'(新生 27, 1931. 1.), 키츠(Keats, J.)의 '희랍고옹부'(新生 31, 1931. 5.), 램(Lamb, C.)의 '낯익던 얼굴'(新生 32, 1931. 6.), 데이비스(Davies, W. H.)의 '무제'(新生 55, 1933. 7.) 등을 번역하여 해외문학의 소개에도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