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공덕귀(孔德貴)
  • 곡부공씨(曲阜孔氏),  출생~사망 : 1911 ~ 1997
제4대 대통령 윤보선의 두 번째 부인.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교육자, 사회사업가이자 여성운동가, 신학자, 종교인, 사회기관단체인, 야당운동가이다. 1911년 4월 21일 경상남도 통영시 명정동에서 지역 유지였던 공도빈(孔道彬)과 방말선(方末善)의 7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어머니 방말선의 다른 이름은 공마리아였다. 자녀는 윤상구(尹商求), 윤동구(尹同求)가 있다.

동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40년 일본 요코하마 공립여자신학교를 졸업하고 김천 황금동교회의 전도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전도사와 신학 강사로 활동하였으며 창씨개명을 거절하여 조선총독부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었다. 광복 직후 한신대학교의 신학 강사로 활동, 미국 유학 준비 중 주변의 권유로 당시 서울특별시장이던 윤보선과 결혼했다.

5.16 군사정변으로 1년 6개월만에 영부인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사회운동가로 적극 활동하였다. 1974년 11월 27일 민주회복국민선언, 76년 명동 3.1 민주 구국선언 등의 서명에 참여하였으며,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의 석방, 탄원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형장을 지키기도 했으며, 구속자가족협의회 의장, 양심범가족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다. 남편인 윤보선과 함께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고, 독자적으로 신학자와 여성운동가로서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 기간 중 박정희 정권에 대항, 투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