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홍선(泓宣) 이용이(李龍頤)
  • 전주이씨(全州李氏),  출생~사망 : 1905 ~ 1979
현대의 고승. 전주이씨(全州李氏). 속명은 용이(龍頤). 호는 태허(太虛). 서울 종로구 견지동 출생. 아버지는 선준(善俊)이며 어머니는 묘행심(妙行心)이다.

어려서부터 정의감과 기개가 있어 주위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고 자랐으며, 1928년 경성예비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그뒤 어머니가 죽자 세간의 학문으로는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느끼고 전국의 여러 사찰을 참배하다가, 1930년 선암사(仙巖寺)에서 경운장로(擎雲長老)의 제자가 되었다.

1931년부터 4년 동안 불경을 배웠으나 공부의 미진함을 느끼고 1935년부터 소요산 백운암(白雲庵)에 들어가 1, 000일 동안 안거하였다. 그뒤 중국 산시성(山西省)으로 가서 명찰을 순례하며 고승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1940년 원불(願佛)인 목불상을 모시고 귀국하여 서울 종로구 숭인동 낙산(駱山) 밑에 묘각사(妙覺寺)를 창건하고 포교를 시작하였다.

6, 25가 일어나자 경상북도 상주군 모동면으로 자리를 옮겨 백화암(白華庵)을 창건하고 선정(禪定)을 익히면서 보임(保任)하는 한편, '법화경 法華經'을 사경(寫經)하며 묘리를 깨우쳐갔다.이 당시 그는 백화암 대사로 널리 알려졌다. 6년 동안 상주에 머무르다가 서울로 돌아와 하루도 빠짐없이 파고다공원에 나가 일없이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설법하였다.

1957년 법화계통을 규합하여 일승불교현정회(一乘佛敎顯正會)를 창립하고 회장으로 취임하였으며, 1965년 12월 8일 대한불교불입종(大韓佛敎佛入宗)을 창종하였다. 1966년 불입종의 초대 종정이 된 뒤 제자들을 가르치고 포교에 전력하여 불입종을 크게 발전시켰다. 특히, 제자들을 교육함에는 엄격함으로 유명하다. 1970년 한일불교친선회 고문으로 추대되었고, 1971년 정부로부터 보국훈장(保國勳章)을 받았으며, 전일본불교회의 초청으로 일본불교계를 시찰하였다.

1973년 마하연불교학생회를 창립하였고, 불교잡지 '범성 梵聲'을 창간하여 청소년교화와 문서포교에 노력을 기울였다. 1975년 한중불교회(韓中佛敎會) 고문, 1976년 국가총력안보협의회 불교대표로 추대되었으며, 같은해 묘각사 대웅전을 중창하였다. 또한, 고희의 나이에도 '법화경' 홍포에 힘을 기울여 백일기도 중 '법화경'을 사경하고 법보(法寶)로 모시기도 하였다.

1979년 6월 24일 나이 74세, 법랍 50세로 묘각사에서 입적하였다. 5일의 종단장으로 장사지낸 뒤 경기도 남양주군 진건면 오남리 다비장에서 다비하였다. 다비 후 128과(顆)의 사리를 얻어 묘각사 경내에 사리탑을 건립하였다. 저서로는 유문집 '성불도(成佛圖)'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