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경욱(景昱)
  • 순천박씨(順天朴氏),  출생~사망 : 1890 ~ 1961
현대의 고승. 성은 박씨(朴氏), 호는 고봉(古峰). 경욱은 법명이다. 대구의 목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에게 사서삼경을 배우고 18세에 혼인하였으나, 19세에 방랑길에 올랐다. 방랑 도중 일하(一河)의 인도를 받아 통도사로 가서 1911년 혜봉(慧峰)의 제자가 되었다. 그뒤 상주 남장사로 옮겨 은사로부터 사미계(沙彌戒)와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전라도 석금산으로 옮겨서 정진하였다. 1915년 팔공산 파계사의 성전선원(聖殿禪院)에서 좌선하던 중 견성(見性)하였다. 그뒤 여러 선지식을 찾아 정진하다가 1922년 덕숭산 정혜사(定慧寺)의 만공(滿空) 으로부터 법맥을 이어받고 고봉이라는 호를 받았다. 그뒤 정혜사에서 여러 해를 지내다가 40세가 되던 해 거사(居士)차림으로 방랑길에 올랐다가, 대구에서 청년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의 정신을 청년들에게 심어주었다. 또한, 상해(上海)에 있는 독립군을 돕다가 1년 동안 구속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그뒤 서봉사(棲鳳寺), 백운사(白雲寺) 등의 조실(祖室)이 되어 많은 수행자들에게 선법을 가르쳤고, 6, 25 때 공주 마곡사 은적암에서 선회(禪會)를 열고 선지(禪旨)를 강하였으며, 말년에는 아산 봉곡사, 대전 복전사, 미타사 등지에 머물렀다. 특히, 그는 질서를 뛰어넘어서 살았던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양산 내원사에 있을 때 주지 혜월(慧月)이 직접 밭갈이 등의 일을 하여 승려들이 마음놓고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자, 혜월이 출타한 틈을 타서 일을 하지 못하도록 소를 장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양식과 옷감 등을 마련하여왔다. 혜월이 돌아와서 소를 찾자 방안에서 옷을 활짝 벗고 소의 울음을 내었다고 한다. 항상 술과 벗하면서 살았으나 언제나 청정한 마음을 잃지 않았고, 술좌석에서도 결코 화두(話頭)를 잃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법을 묻는 제자들에게는 언제나 남의 집 부처를 건드리지 말고 자성 속에서 법을 구하도록 깨우쳤다. 70세에 서울 화계사(華溪寺)로 옮겨 머무르다가 1961년에 입적하였으며, 다비(茶毘) 뒤 빨강, 노랑, 파랑의 사리를 남겨 부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