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노태우(盧泰愚)
  • 교하노씨(交河盧氏),  출생~사망 : 1932 ~ 2021
제13대 대통령 (재임 1988~1993). 군인. 정치가. 교하 노씨 창성군파 30세손이다.

노태우는 1932년 8월 17일 대구(달성군) 공산면 신용동에서 공산면사무소 면서기를 지낸 아버지 노병수와 어머니 김태향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해서 팔공산에 백일기도를 드리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결혼 후 9년만에 노태우를 낳았고 4년 뒤 동생 노재우가 태어났다. 노태우는 세조 때부터 성종 때까지 의정부의 영의정을 지낸 문광공 노사신의 15대손이다.

아버지 노병수는 소학교 학력이 전부였으나 신문물에 일찍 눈을 떴으며, 189cm의 훤칠한 키를 가진 사람이었다. 또한 음악적 재질이 뛰어났으며 한문을 잘 하여 면서기를 지냈다.

어머니 김태향은 학식은 없었으나 신앙심이 두터운 불교 신자로서 헌신적이었다. 그러나 1939년 아버지 노병수는 동생(노태우의 숙부) 노병상(盧秉祥)의 중학교 졸업식을 참석하러 가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노태우는 끼니를 거르는 등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자신으로 인해 형이 죽었다는 부채의식을 가진 숙부는 아버지 이상으로 조카들을 키웠고 사촌 형제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1939년 3월 집근처에서 6km 떨어진 공산소학교에 입학했으며, 직접 걸어서 통학하며 다녔다. 형편이 넉넉치 않아 그는 맨발로도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1945년에 공산소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숙부의 도움으로 대구공업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재학 중 학질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와 열병으로 고생했으나 극적으로 생존하였다. 그리고 대구고보 4학년 편입시험에 10대 1의 경쟁률에서 상위 성적을 얻고, 경북중에 편입학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을 맞으면서 피난갔다가 바로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투입됐고, 1951년에 육사 11기로 입학하여 1955년 졸업하였다. 전두환, 김복동의 육사 동기이기도 하다. 1968년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였으며, 1974년 준장으로 진급하여 공수특전여단장과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 등을 역임하였다.

1979년 12·12사태에 가담하여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되었고, 민주정치세력 진압 등 신군부세력의 정권획득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 참여하였다. 1980년 중장으로 진급, 국군보안사령관에 취임하였다.

1981년 대장으로 예편한 후 외교안보담당 정무제2장관, 1982년 체육부장관을 거쳐 내무부 장관, 1983년 서울올림픽대회 및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으로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였고, 86 아시안게임을 유치시킨 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으로 준비와 진행을 지원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주정의당(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선출되어 민정당 대표위원에 임명되었다. 1987년 6월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6·29선언’을 발표, 정국(政局)을 대화합의 국면으로 전환시켰다. 8월 민정당의 제2대 총재가 되었다.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근소한 표차로 대한민국의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1988년 제13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정치인 및 정치에 대한 풍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였다. 1990년 2월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과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과 함께 3당을 합당하여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출범시킴으로써 4당체제에서 양당체제로 정계를 개편하였다.

외교적으로는 이른바 "북방외교"를 천명하고 1990년 6월과 이듬해 4월에 러시아 대통령 고르바초프와의 정상회담으로 한·러 국교회복에 새 전기를 마련하고, 중국과 국교를 수립함으로써 북방외교의 기틀을 마련하며 한국 외교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1991년에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자치제 부활을 수용하여 지방자치제도를 부활시켰고, 남북한 UN 동시 가입 결정이 내려지자 보수 세력의 반발에도 이를 강행하였다.

1993년 퇴임 후 1995년에는 재임기간 중의 비자금 사건 등의 연루,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강제 진압과 12·12 군사 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구속되었다. 1997년에 특별사면을 받고 복권되었다.

2021년 10월 26일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 끝에 향년 89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무궁화대훈장, 보국훈장 국선장(國仙章), 을지무공훈장 등을 받았으며, 저서에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