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태원(金泰源)
  • 경주김씨(慶州金氏),  출생~사망 : 1900 ~ 1951
독립운동가. 호는 심산(心山). 대전 출신. 아버지는 단의(旦義). 1918년 종형 용원(庸源)과 같이 중국으로 망명하여 황푸육군군관학교(黃○陸軍軍官學校)를 졸업하였다. 1922년 광복군사령부 국내출장원인 이용담(李龍潭), 주상옥(朱尙玉), 김택수(金澤秀), 정창화(鄭昌和) 등과 함께 평안북도 삭주에 잠입하여 대관면(大館面)의 일본경찰주재소 및 창성주재소를 습격하고 일본경찰 4명을 사살하였다. 그해 8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신임하에 양승우(楊承雨) 등과 벽창의용단(碧昌義勇團)을 조직하여 군자금모금과 일본경찰 및 밀정의 사살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어 만주 관전현(寬甸縣)으로 건너가 무장투쟁을 벌였으며, 1926년 다시 국내에 잠입,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신의주지방법원과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복역중 탈옥하여 상해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활약하다가 광복을 맞이했다. 그뒤 한국독립당 조직부장으로 건국사업에 기여했다. 1963년 건국훈장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일명 김성원(金性源), 자는 경중(景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