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안주 출신. 1931년 안주공립농업학교 3학년초에 조국독립전선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여, 박남영(朴南英), 최몽필(崔夢弼), 주용엽(朱鎔燁) 등과 더불어 비밀토론회를 결성하고, 1932년 동맹휴학을 주도하였다. 1934년 6월에는 상해로 밀항하려다 경찰에 잡혔다가 1935년 3월 풀려났으며, 그 즉시 안주사립보광학교의 교원이 되어 후배양성에 진력하였다. 뒤에 일본에 유학하여 1941년 주오대학(中央大學)법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성경상업학교(盛京商業學校)교사로 근무하던 중 중국 칭다오(靑島)로 망명하였다. 1943년 9월 북경에서 윤용호(尹龍虎), 김봉한(金鳳翰) 등과 함께 항일지하공작을 전개하다가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제3지대 근거지인 푸양(阜陽)에서 훈련을 받고, 1944년 화북지구(華北地區)공작특파단장의 임무를 띠고 북경에 파견되었다. 김광언(金光彦), 윤창호(尹昌浩), 조성산(趙城山) 등 다수 동지와 더불어 광복군 확산을 위한 애국청년 모집 및 한중(韓中)양국 민중의 항일의식 고취 등 선전활동을 하였고, 특수훈련반원을 국내에 진입시킬 목적으로 수송용 선박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으며, 1946년 5월에 귀국하였다. 1963년에 대통령표창이,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