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일명 혜춘(惠春). 충청남도 홍성 출생. 1914년 감리교 협성신학교(協成神學校)를 졸업하고, 다음해에 감리교의 목사가 되었다. 1919년 3월 한국독립운동본부의 지령으로 중국 북경(北京)에 파견되어 박정래(朴正來), 조두진(趙斗珍), 유장연(劉璋淵), 전재홍(田在弘), 유중한(柳重韓), 연병주(延秉柱), 최훈식(崔勳植) 등과 더불어 신대한동맹회(新大韓同盟會)를 조직, 회장에 박정래를 추대하고 자신은 총무를 맡아보았다. 1920년초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표자격으로 중국 각 성(省)을 순방하면서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과 지원을 요청하여 독립운동의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그밖의 다른 나라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도 활동하였다. 그뒤 중일전쟁의 확대로 임시정부가 항저우(杭州), 충칭(重慶)으로 이동하여 독립운동을 펼 때, 의정원의원, 검사원원장 등을 역임하며 임시정부 제4, 5차 개헌에도 간여하였다. ]1945년 화중구(華中區)한교선무단장이 되었다. 광복 후 1946년 임시정부 주화(駐華)대표가 되었으며, 다음해 대만한교협회 이사장으로 한국동포의 생명과 재산, 안전귀국 등의 업무를 처리하다가 과로로 병을 얻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