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정수(金晶壽)
  • 전주김씨(全州金氏),  출생~사망 : 1909 ~ ?
독립운동가. 원명은 정범(禎範), 별명은 원국(元國). 호는 벽파(碧波). 평안북도 초산 출신. 아버지는 병식(炳植)이다. 할아버지인 낙용(洛用)은 3, 1운동 때 초산에서 시위운동을 벌였고 일본헌병대를 습격하다가 투옥되어 옥사하였으며, 아버지는 동생과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2년 가족과 함께 간도의 집안현 주선구(輯安縣朱仙溝)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천도교강습소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이때 구왜소년단(驅倭少年團)의 부단장으로 일본경찰의 정황을 탐지하여 독립군에 알리는 한편, 밤에는 군사훈련에 힘썼다. 1923년 아버지가 중국관헌에 붙잡혀 투옥되자, 이에 자극되어 그해 9월 독립단 최석순(崔碩淳) 부대에 입대하여 일본어를 습득하는 한편, 전술을 익혔다. 1923년 모험대원 황학봉(黃學奉), 박기범(朴基範), 정낙영(鄭洛永), 김형준(金亨俊), 김영복(金永福), 김병걸(金炳杰) 등과 함께 국내로 들어와 보통학교 학생으로 행세하면서 정보를 수집하였다. 그해 가을 흥경군관학교(興京軍官學校)에서 수학하다가 참의부(參議府)본부중대 및 제4중대에서 근무하였다. 1924년 다시 국내에 잠입하여 초산에서 일본경찰의 경비전화선을 끊었으며, 군자금출연 거부자 및 이적행위자들의 집을 불태웠으며, 성면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를 사살하고 원대복귀하였다. 1925년 참의부의 별동유격대 대장이 되어 일본경찰의 밀정을 제거하고 무기를 노획하였다. 1926년 재만독립군(在滿獨立軍)이 대한혁명군으로 개칭되자, 강계의 낭림산을 근거로 하여 자성, 후창, 삼수, 갑산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초산군 동면에서 위원초산서(渭原楚山署)의 연합수색대에 붙잡혀 징역 10년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그뒤 다시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광복을 맞아 귀국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국민장이 추서되었다.